출산 후 60일이 지나서야 쓰는 입원실 후기.
아기가 태어나고나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기 자는 사이 사이, 자투리 시간을 쪼개서 쓰는 능력치가 점점 올라간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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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쯤 분만을 마쳤는데 후처치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3도 열상이라 꿰매는 정도가 꽤 크다고 했다)탯줄 자르고 아기 기본 검사 등등이 끝나고 나니 거의 자정이 되었다. 얼른 입원실로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아기&남편과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야간 근무 간호사를 따라 입원실 방 중에 비어있는 한 곳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입원실 내 비품들을 안내해줬고 애기 2번 수유 할 때, 그리고 내 첫 소변 후 콜을 하라고 라고 나갔다. 갓 태어난 아기와 방금 막 출산하고 나, 남편 이렇게 셋만 남겨졌다. 우린 아기와 적응할 시간이고 뭐고 그냥 실전 육아의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두 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한다고 해서 핸드폰 알람을 맞추고 좀 자보기로 했다. 남편은 엄청나게 피곤했는지 바로 곯아떨어졌고 나는 뭔가 각성상태에 있는 것처럼 잠이 안왔지만 일단 눈은 감고 있었다. 잠을 잔건지 안잔건지도 모르겠는 중에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주섬주섬 일어나서 배시넷에서 애기를 꺼내 젖을 물렸다. 갓 태어난 작디작은 애기를 어떻게 들어서 안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가 몰랐던 사실은... 아기는 핸드폰 알람 맞추듯이 딱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는게 아니라는 사실.ㅎㅎㅎ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육아 지식이 1도 없었던 무지한 엄마아빠^^; 애기는 우리가 맞춘 알람시계와 무관하게 시도때도 없이 응애 응애 악악 울기 시작했고 우리는 밤새 멘붕에 빠졌다.
잠을 하나도 못잤는데 어느덧 다음 날 아침. 간호사, 레지던트 등이 하나둘씩 들어와서 내 상태, 아기 상태를 체크하고 갔다. 잠을 못자서 비몽사몽으로 질문에 응답을 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론 미리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햄버거, 피자 이런건 아니었고 나름 식단에 신경을 썼다는(?) 음식들이 나왔다.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첫끼 이후부터는 미리 메뉴 주문을 받아서 매끼마다 내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에피타이져, 메인메뉴, 음료까지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둘째날 밤이 되었다. 이날 밤에도 아기는 엄청나게 울어댔다. 갑자기 컥컥 소리를 내면서 자지러지게 우는 횟수가 많아져, 겁이 나서 간호사를 호출하기도 했다. Nurse pracitioner 라는 수석 간호사도 다녀갔는데 입, 코 안에 양수가 좀 남아있어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다고. 강한 흡입기로 뽑는 걸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무리해서 뽑아내면 오히려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 권하진 않는다고 했다.
아기가 역시나 또 밤새 울었는데 간호사가 와서 혹시 아기를 봐주길 원하냐고 했다. 알고보니 요청하면 nursing room에 데려가서 아기를 몇시간 봐주는게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린 전혀몰랐다... Oh please!!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우린 세시간 동안 정말 단잠을 잤다.. 잠깐이라도 푹 자고 나서 아기를 만나니 아기가 그렇게 반갑고 예쁠수가 없었다. 잠을 못자면 모성애고 뭐고 너무 힘들고 피폐해진다는걸 느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역시나 수많은 의사, 간호사, 레지던트들을 만나서 첵업을 했다. 팀 단위로 들어오는데 소아과 팀이 정말 친절했다.. 아기 돌보는 방법 속성으로 잘 배웠다. 이 날은 아기 포경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서 잠시 간호사가 와서 아기를 데려갔다. 막상 쪼그만 애기를 포경수술하러 보내려니 너무 맴찢이었다.ㅜㅜ 포경수술 마치고 속싸개에 고이고이 싸서 돌아왔는데 짧은 몇시간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국소마취+설탕물로 고통을 경감시켜준다고 하는데, 돌아온 뒤에 너무 곤히 오래 자서 혹시나 마취가 너무 세게 된거 아닌가 온갖 걱정을 하기도..(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ㅎㅎ)
* 포경수술을 하는 doctor가 너무 바빠서 nurse practitional로부터 포경수술 받는 것도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처음에는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다가.. 기다림이 끝이 없어서 그냥 nurser practitional에게 받겠다고 했다. NP도 경험이 굉장히 많은 분들이기 때문에 전혀 차이가 없는 듯하다.
** 포경수술 후 집에 와서 5일 정도는 계속 바셀린+거즈로 관리를 해줬다. 초보 엄빠는 기저귀 가는 것도 어설픈데 포경수술 부위 관리까지 해주려니 처음엔 그냥 겁이 났었다. 이모님 오시고나서 척척척 갈아주시는걸 보고 용기를 냈고,, 계속 하다보니 익숙해짐. 병원에서는 거즈 한바닥 가득가득 바셀린을 발라서 환부를 넓게 감싸주라고 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넓게 바르진 않아도 되는 것 같다. 환부에 거즈가 닿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양을 묻혀주면 되는 듯!
이날 집에 가서부터가 멘붕의 시작이었다...ㅋㅋㅋ 하.. 진작 알았더라면 당일부터 이모님을 집으로 모셨어야 했다..
퇴원하고 집에 와서 대략 9시까진 아기가 정말 평온했다. 우리가 정말 순한 아기를 낳은 줄 알고 기쁨에 젖어있던 그때.. 밤 9시부터 아기가 정말 한숨도 쉬지 않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있는대로 두 시간 간격으로 40분~1시간 정도씩 수유를 했는데 아기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빨려 하고 난 힘들어서 지칠대로 지쳐갔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밤새 그러고 있으니 눈앞이 캄캄했다..(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하는건가.. 진심으로 고뇌에 빠짐..ㅠㅠㅋㅋㅋ) 아파트라 이웃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미래에 대해서도 깊은 고뇌를 함과 동시에 약간의 우울감까지 느끼며 아침이 밝았다.
다음날 아침 소아과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소아과로 향했다.
아기는 밤새 빽빽 울어서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우리도 심신이 피폐해져서 셋다 말이 아닌 꼴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 아기가 왜이렇게 우는거죠ㅠㅠ" 하소연을 했다.. 집에선 밤새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환한 곳에서 보니 애기가 황달기도 있었다. 우선 황달 검사를 하고 나서, 모유 수유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진료실에서 아기에게 직접 수유하는 모습을 확인했는데, 아직 모유 양이 충분하지 않아서 아기가 배고픔에 우는 거라고.ㅜㅜ 하시며 시밀락 액상분유 2oz짜리를 주셨다.. 아기에게 15ml 정도만 먹이면 된다고 해서 바로 먹여보았는데 Oh my god.. 갑자기 정신을 놓을 정도로 울던 아기가 평온함을 되찾았다.ㅜㅜ 할렐루야.. 결국 우리 아기는 배가 고파서 밤새 울었던 것. 원래 병원에서 유축을 해보아야 한다는데 우린 그걸 몰라서 모유 양이 충분치 않은지도 모르고 계속 젖만 물렸던 것이다.ㅜㅜ 조금만 분유를 보충해줬어도 밤새 서로 피폐해지는 상황은 없었을 거다.. 아무튼 집에 와서 우리끼리 보낸 첫날은 정말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ㅎㅎ 소아과에 다녀오고나서 오후에 이모님이 구세주처럼 우리 집에 도착하셨고.. 며칠간 가슴 마사지를 받고나서 모유 양이 조금은 늘었다...(그래도 양은 충분치 않아서 결국 분유로 갈아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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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가 아기 케어에 대해 조금만 더 잘 알았더라면 그때 그 상황을 좀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울어서 정신이 피폐해지긴 했으나, 우리가 2박 3일을 보낸 미국 산부인과 입원실은 정말 넓고 쾌적하고 창밖 뷰도 아름다웠다. 10월 말에 출산하게 되어 대학가의 아름다운 단풍도 창밖으로나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힘들었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조용하고 잔잔하고 평화로웠던 입원실의 풍경이 더 진하게 남는 것 같다. 그래서그런지 요즘은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둘째 낳을 땐 좀더 여유만만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ㅎㅎ